소녀는 수줍게 앉아서 경기를 봤다. 홍명보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과 사진을 찍을 때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였다.
1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홍명보장학재단 자선축구 ‘셰어 더 드림 풋볼 매치’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워가는 정소영 양(13·경기 파주시 금신초)에게 도움을 전해주는 행사로 시작했다. 셰어 더 드림 캠페인으로 기금의 일부를 소영 양에게 배정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테마가 있는 자선 이벤트다.
재단 이사장인 홍 감독은 또래보다 2학년이 뒤진 채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소영 양에게 손을 내주었다. 소영 양은 6년 전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가 법적인 절차에 차질을 빚어 3년 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암 투병 중인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 힘겨운 생활이지만 지난해 말 영어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미래를 착실하게 가꾸어 가고 있다.
요즘 소영 양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할머니의 건강이다. “할머니가 걷기가 힘들 정도로 아프다”며 경기 내내 집에 있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소영 양의 꿈은 의사다. “봉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면 우리 할머니처럼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싶어요.” 소영 양의 눈빛 속에는 소녀답지 않은 확고한 미래에 대한 목표와 자신감이 보였다.
소영 양은 평소 좋아했던 두 사람이 자선경기에 참가해 이날 기쁨이 두 배였다. 소영 양은 여자축구선수 여민지(함안 대산고)의 열렬한 팬이다. “민지 언니를 직접 볼 수 있어 기뻤다”는 소영 양은 “연초에 축구하는 모습을 봤는데 너무 잘했다. 그 때부터 좋아했다. 같은 여자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축구 잘하는 개그맨 이수근도 소영 양이 좋아하는 스타다. “TV 프로그램 ‘1박 2일’에 나오는 모습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좋다”며 이수근(5골)이 골을 넣을 때마다 밝게 웃었다.
홍 감독은 소영 양에게 “힘들더라도 절대 꿈을 포기하면 안 된다. 열심히 살면 언젠가 꼭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영 양은 “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자선경기를 마련해주신 홍 감독님, 그리고 선수 모두 고맙다”고 답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멤버 등이 출전해 벌인 풋살경기에서 희망팀은 13-12로 사랑팀을 이겼다. 대회 최우수선수에는 홍정호(제주)가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