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갈 때 한 번도 아들 먹을 것만 챙겨간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땐 축구부 머릿수만큼 크림빵을 사오고, 중학교 땐 매달 한 번씩 축구부 전원을 단층 양옥집 마루에 불러 배부르게 불고기를 구워 먹였다. 큰 부자도 아니었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방앗간을 했다. 아들 친구들을 챙기는 데는 돈을 안 아끼면서 아들이 사달라고 노래하는 자전거는 끝까지 안 사준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들이 다음 달 새로 출범하는 10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10억 클럽'의 첫 회원이 된다. 지금껏 15억원 이상 기부해온 홍명보(43)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 이야기다.
홍 감독은 "운동을 해보니 팀이 이기지 개인이 이기지 않더라"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보다 주변부에서 말없이 뛰는 선수를 받쳐줘야 하나의 '팀'이 완성되는데, 사회도 마찬가지 같아 기부한다"고 했다.
홍 감독은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모델을 보여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2일 "홍 감독은 최신원 SKC 회장(12억8000만원)과 함께 가장 많은 돈을 모금회에 기부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라면서 "'10억 클럽'은 두 사람을 공동 1호 회원으로 출범, 사회 지도층의 자발적인 기부 문화를 확산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아너소사이어티의 모델이 된 미국 토크빌소사이어티(기부 활동에 적극적인 미국 부자 2만6000명의 모임)도 '1만달러 이상'부터 '100만달러 이상'까지 9단계로 회원을 관리하며 1회적 기부가 아닌 평생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