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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자연인 홍명보, 축구인 홍 감독과 함께 한 1박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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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15회 작성일 18-10-1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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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 홍명보(42), 축구인 홍 감독(올림픽대표팀)과 여행을 떠났다. 산과 바다가 환상의 하모니를 연출하는 경남 남해에서 1박2일을 함께 했다.

선수 홍명보를 '필드'에서 처음 만난 건 2002년 한-일월드컵 직전인 2001년이었다. 2003년 LA갤럭시(미국)에서 뛸 때는 홈개막전에 맞춰 LA 근교의 집을 찾았다. 그는 2004년 10월 현역에서 은퇴했고, 이듬해 지도자로 변신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과 2009년 이집트 국제축구연맹 청소년월드컵(20세 이하)에선 각각 코치, 감독으로 첫 발을 뗀 그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40대의 '인간 홍명보'를 알기 위해 16일 남해로 갔다. 남해에서는 제47회 전국춘계대학축구연맹전이 15일 개막됐다. 홍 감독은 '숨은 진주'를 찾기 위해 김태영(41)-박건하 코치(40), 김봉수 골키퍼 코치(41)를 이끌고 경기장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코칭 스태프 중 가장 먼저 일어나 샤워를 하고 이도 닦았다.

남해=김재현 기자 basser@sportschosun.com 



▶첫 단추부터 깨진 선입견

감독은 권위의 상징이다. 그만의 공간이 존재한다. 그런데 숙소인 힐튼남해 리조트 숙소에는 그의 공간이 없었다. 한 곳에서 코치들과 함께 뒹굴고 있었다. 처음부터 선입견이 깨졌다. 

홍 감독이 오전 7시쯤 가장 먼저 눈을 떴다. 버릇이 됐다고 한다. 선수들과의 합숙 때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평소에도 두 아들(성민·13세, 정민·11세)과 아침을 꼭 함께 한다. 교육은 밥상에서 출발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감독이 일어나자 코치들도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났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마친 오전 9시 숙소에는 여유가 흘렀다. 수다가 시작됐다. 김봉수 코치가 입을 뗀다. "감독님 우리 좀 자주 봐요. 얼굴 잊어버리겠어요. 저도 그런데, 박건하 코치는 오죽하겠어요." 투정 섞인 목소리였다. 홍 감독의 대답이 돌아온다. "누가 놀라고 했어. 가족을 위해 시간을 보내란 말이야. 자기계발도 하고…." 웃는다. 홍 감독은 소집 이외의 시간에는 코치들에게 최대한 자유를 준다. 하지만 이들의 하소연도 설득력이 있다. 하루 이틀 집에서 보내는 건 괜찮지만 더 길어지면 '백수'인양 가족들의 눈치를 본다.

박 코치는 더 특수하다. 그는 올초 수원 2군 코치에서 올림픽대표팀 코치로 말을 갈아탄 '신입생'이다. 대표팀의 경우 클럽과 속성이 다르다. 경기가 열리면 길게는 두 달 가까이 집에 못 들어간다. 홍 감독이 더 놀린다. "아내와 양재천에서 산책도 하고. 애들과 시간도 보내고. 장학재단을 위해 사람도 만나고…. 난 좋은데."

▶선배앞에선 애교가 넘쳤다

첫 경기 시간인 오전 11시에 맞춰 홍 감독은 10시가 지나자 숙소를 나섰다. 팀은 둘로 쪼개졌다. 그는 박 코치와 짝을 이뤘다. 작전회의는 전날 밤 마쳤다. 어떤 선수를 눈여겨 볼 지 이미 상의를 끝냈다. 홍 감독의 차량은 남해 상주체육공원으로 향했다. 광운-관동, 우석-홍익, 동국-단국대의 조별리그를 차례로 보는 일정이었다.

'미니 관중석'에 자리를 잡았다. 축구인들이 속속 집결했다. 청소년대표팀(20세 이하)의 서효원 수석코치(44)와 김풍주 골키퍼 코치(47)도 모습을 나타냈다. 서 코치와 김 코치는 "왜 왔어", "선수들 다 돼 있잖아"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홍 감독은 A대표팀이 올림픽대표 선수들을 선점해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홍 감독도 장난기가 발동했다. 김풍주 코치의 신경을 건드렸다. "옛날에 대표팀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겁나게 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무섭다." 김 코치가 "야, 진짜 믿겠다"라고 응수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둘의 입씨름은 계속됐다. 후배의 애교넘친 도발에 김 코치가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홍 감독은 대학 3학년까지 무명이었다.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했다. 청소년대표를 거치지 않았다. 대학 3학년 때 기회가 왔다. 이탈리아월드컵대표팀 사령탑인 이회택 감독이 그를 발탁했다. 홍 감독은 1990년 2월 4일 노르웨이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김 코치는 당시 대표팀에서 서열상 허리였다.

축구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했다. 김 코치는 후배들을 가장 잘 챙겼다. 홍 감독과 김 코치는 이영진 대구 감독(48), 황선홍 부산 감독(43), 노정윤(40) 등과 어울려 여자 농구대표팀과 '간식 내기' 농구도 했단다. 홍 감독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김 코치에게 홍 감독의 첫 인상을 물었다. "대학에서 잘 한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 때는 무명이었어요.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이회택 감독님이 스위퍼로 쓰겠다고 뽑았어요. 불쑥 숙소에 나타나 인사를 하며 홍명보라고 하더라구요. 참 영리했죠. 선배들에게도 잘 하고. 나이는 어렸지만 그 때도 늘 중심은 잡고 있었어요."

▶남해에 뜬 명사, 친절한 홍 감독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쳤지만 그의 인기만 못했다. 경기장 여기저기서 "와, 홍명보"라는 소리가 메아리 쳤다. 대뜸 손을 내밀면, 단 한 번도 싫은 기색 없이 화답했다. 점심을 위해 자리를 근처 식당으로 옮겼다. 어딜 가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안할 정도였다.

같이 있던 한 지인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이래갖고 TV 나오는 사람하고 다니기 싫은 기라. 홍 감독 좀 멀리 떨어져 있어래이"라며 웃는다.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옆 테이블에서 초대한다. "홍명보 감독님, 동네 어르신이 좀 보자고 합니데이."

이내 "아, 네~"하고 일어섰다. 대낮부터 소주잔을 내밀었다. 시골의 정이었다. 난감했다. 한창 선수들을 점검하는 중이라 차마 술은 입에 댈 수 없었다. 사실 술도 싫어한다. 거절도 능숙했다. "제가 일하는 중이라 술은 못 마시고 제가 드리겠습니다"라며 소주병을 들었다. 10여분간 그들의 대화에 끼어 "네, 네"를 연발했다. 

식당 문을 나서자 식은땀을 닦았다. 팬들의 사랑은 늘 고맙다. 그러나 솔직히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어르신이 불러서 안 갈 수도 없고…. 그래도 고마워 해야죠." 

▶사우나에서 나눈 또 다른 정

추운 날씨에 3경기를 연속 관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몸이 얼었다.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일과 후 홍 감독의 배려는 사우나행이었다. 홍 감독의 '벗은 몸'은 처음 봤다. 놀랐다. 40대의 나이에도 군더더기 없는 몸매를 자랑했다. 32인치의 허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노천탕을 좋아한다"는 홍 감독과 남해 바다를 바라보며 야외 탕속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8년 전 그는 둘째 아들이 운동신경이 뛰어나 축구를 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 얘기를 꺼냈더니 "축구 선수는 아닌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운동 선수와 예술가는 DNA가 비슷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첫째는 미술에 꽤 소질이 있어요. 뒷바라지 잘 해야죠. 둘째는 얼마나 장난을 많이 치는지…." 둘째가 떠오른 듯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둘째는 청산유수에요. 말도 얼마나 많은지. 아나운서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는 두 아들과 허물이 없다. 중학교 1학년인 첫째의 여자친구 얘기도 꺼냈다. 요즘은 아들 세상의 '은어'를 배우는 재미에 빠졌다며 웃었다. 다만 한 가지는 절대로 양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빵점을 맞거나 나쁜 짓을 해도 야단은 안 쳐요. 단 거짓말을 할 경우는 매를 들어요. 나쁜 짓을 했든 좋은 일을 하든 사내답게 정직하게 살았으면 해요." 

아내 조수미씨(38)에 대해서는 돌아오는 대답이 변함이 없다. "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 자연스럽게 가족의 가치를 잘 알게 돼요. 아내는 함께 외국 생활하면서 참 많이 희생했어요. 더 잘 해줘야죠." 사우나에서 '사나이 홍명보'의 또 다른 끈끈한 정을 느꼈다. 


 ①씻은 뒤에는 얼굴 관리를 위해 로션을 바르는 일도 잊지 않는다.

 ②아침식사를 마친 뒤 가진 미팅. 얘기도 많이 듣고 말도 많이 한다.

 ③아무리 강철같은 몸이라도 꽃샘추위에는 속수무책이다. 두터운 점퍼로 무장을 했다.

 ④추위 속에서 관전한 3경기. 귀를 열고 코칭 스태프의 의견을 들었다.

 ⑤주위에 사람들이 북적거려도 감독은 늘 외로운 자리다. 남해 바닷가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⑥고생한 코칭스태프와의 저녁식사. 코치들과의 살가운 대화 속에 고단함도 잊었다. 



▶감독 홍명보과 세상의 벽

홍 감독에게도 말 못할 고민은 있다. 주위의 시샘이 만만치 않다. 그 또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쉽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혜'를 운운한다.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의 선수 차출 갈등은 또 다른 세상의 벽이었다.

청정 남해 바다에서 잡은 회로 저녁식사를 마친 후 해변에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다. 코치들은 웬만해선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 감독의 성향에 답답할 때가 많다고 했다. 울어야 떡하나라도 더 챙길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울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어요. 내가 힘들면 상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잖아요."

대망의 2012년 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이 6월에 시작된다. 27일에는 울산에서 중국과 평가전을 치른다. 7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향한 첫 여정이다. A대표팀은 25일 온두라스와 친선경기를 치른다. 조광래호는 김영권(21·오미야) 홍 철(21·성남) 윤빛가람(21·경남) 김보경(22·세레소.오사카) 조영철(22·니가타) 지동원(20·전남) 등 올림픽대표팀 핵심 전력을 모두 소집했다.

홍 감독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A대표팀이 우선인 건 나도 인정해요. 하지만 올림픽 선수들을 뽑아놓고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는 것은 문제죠. 그들이 올림픽팀에서 뛰면 한국 축구를 위해서도 더 낫지 않을까요. 6월 예선에서도 중복 차출 갈등이 생기면 그 때는 말을 해야죠."

홍 감독은 지도자 길을 걸은 후 딱 한 차례 선수들에게 화를 냈다.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 이란과의 3~4위전에서다. 전반을 0-2로 마치자 선수들의 정신력을 호되게 혼냈다. 이란전에 패하면 그 또한 지휘봉을 내려 놓을 생각이었다. 다행히 각본없는 드라마가 후반에 연출됐다. 1-3으로 뒤진 후반 33분부터 11분간 3골을 작렬시키며 4대3으로 역전승했다.

냉정함을 잃지 않는 그도 그때는 울었다. 어린 선수들과 마지막 약속을 했다. "런던올림픽까지 같이 가자." 그동안 많은 유혹이 있었다. 그는 클럽팀의 사령탑 후보 '0순위'다. 흔들리지 않았다. "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른는 사람들이 절 너무 쉽게 판단하고 얘기합니다. 어린 선수들과의 약속은 꼭 지킬거예요. 런던올림픽 후에는 어떤 일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표팀 감독은 아닐거예요. 또 다른 세상이 열리겠죠."

숙소로 돌아온 홍 감독은 코치들과 회의를 한 후 27일 중국과의 평가전에 출전한 최종엔트리 23명을 확정했다. 홍 감독의 '다큐멘터리 24시간'도 막을 내렸다. 

스포츠 조선 김성원 기자 / 2011. 03. 20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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