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자신이 갖고 있던 소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중요하면서도 참 어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큰 것만을 내다보지 않고 그 올곧은 소신을 지켜냈을 때 그 사람의 가치는 더욱 빛나 보일 때가 있습니다.
최근 축구대표팀 감독 인선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소신 있는 행보로 주목을 끈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올림픽 대표팀 겸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홍명보 감독을 두고 하는 얘기입니다. 가장 유력한 감독 후보로 거론됐던 홍명보 감독은 "2012년 올림픽에 집중하고 싶다"면서 거듭 대표팀 감독직 고사를 밝혔고, 결국 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을 후보군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홍 감독은 현재의 목표에 집중하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자신이 현재 맡고 있는 아시안게임과 런던올림픽에 온 힘을 쏟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사실 월드컵 직후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전임 감독이 성과를 낸 뒤, 맡는다면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면서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홍명보 감독 역시 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으면서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안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홍 감독의 경우, 현재 올림픽팀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대표팀도 맡게 됐다면 탄력까지적인 팀 운영이 가능해 큰 문제없이 대표팀 감독을 수행해 낼 수 있었습니다. 과거 허정무 감독이 1998년부터 2000년 올림픽팀과 국가대표팀을 겸임하면서 젊은 선수들을 키워내는데 역량을 발휘하며 나름대로 성과를 냈던 사례도 있었고, 홍명보 감독 역시 이미 U-20 월드컵을 통해 선수 발굴에는 어느 정도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기에 겸직을 한다면 '성공한 지도자'를 꿈꾸는 본인 입장에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처음부터 모든 토끼를 잡는 것보다는 하나하나 과정을 밟아나가겠다는 뜻을 더욱 우선적으로 고려한 듯 합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해내려 하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분명한 성과를 낸 다음에 더 높은 자리로 오르는 꿈을 꾸려 한다는 것입니다. 스타 의식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위하고 또 한국 축구 전체를 위해서 분명한 성과를 낸 뒤에 다음 행보를 생각하는 홍명보 감독의 자세는 분명히 남달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홍명보 감독은 '병역 혜택'이 걸려 있는 아시안게임, 올림픽에 좀 더 집중해서 실력 좋은 후배, 제자들이 더 나은 여건 속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랐을 지도 모릅니다. 이미 홍 감독은 현역 시절이었던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게 16강에 오른 뒤 '병역 혜택'을 건의해 이를 수락 받은 바 있었는데요. 후배들이 축구에만 집중해서 해외 무대를 빛내고, 이를 통해 한국 축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는 병역 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만이 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생각했을 것입니다. 올림픽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던 8강의 벽을 넘고, 아시안게임 역시 24년동안 한 번도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던 한(恨)을 풀면서 한국 축구 미래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제자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홍명보 감독은 현재 맡고 있는 임무에 올인하고픈 마음이 강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좀처럼 웃지 않는 마스크 때문에 홍명보 감독을 두고 '냉철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국 축구가 좋은 성과를 낼 때마다 그는 함박 웃음을 지으면서 누구보다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U-20 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에 조금이나마 봉사할 수 있었던 홍명보 감독이 소신을 지키고 올 11월에 있을 아시안게임, 그리고 2012년 8월에 있을 영국 런던올림픽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보여주고 더 큰 웃음을 짓는 모습을 꼭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적어도 이번 성인 대표팀 감독직 고사만큼은 홍명보 감독의 의지, 소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연합뉴스 / 2010. 7. 6 (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