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선수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리그, 돈의 액수만으로도 화제를 모으는 리그, K리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리그. 모두 중국슈퍼리그(CSL) 이야기다. 중국인들의 돈봉투 너머를 보려 노력해 온 'Football1st'가 중국 축구 '1번가'의 현재 상황과 그 이면을 분석한다. 가능하다면 첫 번째로. <편집자주>
"젊은 선수들의 수준은 항저우가 가장 좋다."
중국 축구 현장에서 일하는 지도자와 관계자들이 지난해는 물론 올해도 입을 모아 하는 얘기다. 2016시즌 중국슈퍼리그(CSL)에서 예산 규모가 가장 적은 편이었던 항저우뤼청(杭州绿城, 그린타운)은 결국 강등을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지휘한 홍명보(48) 감독을 선임한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항저우는 지난 1월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부임한 뒤 플랜B 확보를 위해 개최한 '2017 차이나컵'에 나선 중국대표팀에 3명의 선수(펑강, 천종류, 조더하이)를 배출했다. 창단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자체 육성 선수를 국가대표팀에 세 명이나 국가대표로 만든 것은 중국의 아약스가 되겠다는 항저우의 유소년 프로젝트의 결실이었다. 이들 중 3월 월드컵 예선 명단에 든 선수는 없었지만, 강등된 팀에서 대표 선수가 나왔다는 점은 고무적인 결과였다.
항저우는 오카다 다케시 전 일본 대표팀 감독을 비롯한 일본인 유소년 코치들을 대거 영입해 미래 계획을 구성했었다. 기술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정신적인 면, 조직적인 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홍명보 감독은 항저우 프로젝트의 화룡점정이었다.
2017시즌을 중국갑급리그에서 보내게 된 항저우는 세 명의 핵심 선수를 거액에 이적시켰다. 1월 중국대표팀에 소집되었던 펑강(24)은 허베이화샤싱푸로 이적한 뒤 허난전예로 임대됐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소화할 수 있는 자오위하오(24)도 허베이에 입단했고, 곧바로 1군 주전 멤버로 나서고 있다. 풀백 차오하이칭은 장쑤쑤닝으로 이적했다.
2016시즌 항저우가 맞은 위기는 2015시즌 활약한 주전급 선수 7명을 이적시키면서 찾아온 전력 공백 때문이었다. 2017시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항저우 핵심 선수들은 팀의 강등에도 홍 감독이 잔류할 경우 잔류를 다짐했었다. 홍 감독 지휘 아래 기량 발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2017시즌 목표도 '유망주 육성'...20세 이하 10명 1군 선발
홍 감독은 2017시즌 항저우와 미팅을 통해 새 시즌 목표를 설정했다. 슈퍼리그 진입 경쟁이 뜨거워진 갑급리그도 '쩐의 전쟁'이다. 홍 감독은 "승격을 원한다면 투자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항저우의 선택은 지난 몇 년과 다르지 않았다. 세 명의 핵심 선수를 이적시키며 수백 억원의 이적료 수익을 거뒀다.
이적료 수입은 선수단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구단 운영과 유소년 축구에 쓰기로 했다. 항저우는 2015시즌에 이미 2016시즌 예산을 당겨쓰면서 자금이 충분치 않았고, 2017시즌은 강등으로 인해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 외국인 선수는 안셀무 하몽, 데니우손 가비오네타, 매튜 스피라노비치 등 기존 자원을 유지하는 선에서 그쳤다.
중국 언론은 지난시즌 항저우의 강등 이유로 부족한 선수단 투자를 꼽았다. 유소년 육성은 성공적이었으나, 연간 예산이 2,000억원에 육박하는 '전국 7웅'을 비롯해 투자 규모가 커진 슈퍼리그에서 살아남기엔 외국인 선수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구단 운영상 몇 안되는 긍정 평가가 홍 감독 영입이었다.
2017시즌 홍명보 감독의 구단 운영은 더 급진적으로 바뀌었다. 2016시즌 23세 이하 선수들로 1군 엔트리의 대다수를 구성했던 홍 감독은 2017시즌에 20세 이하 선수를 10명이나 포함시켰고, 이중 절반 가까이를 선발 명단에 투입하며 기회를 주고 있다.
항저우는 2017시즌 개막 후 3라운드까지 1승 2무를 기록했는데, 갑급리그에서 가장 어린 팀으로 경기를 치르며 남긴 결과라는 점에서 호평 받고 있다. 홍 감독은 지난해 만 18세 수비수 통레이를 데뷔시켰다. 구단 역사상 최연소 데뷔 기록이었다.
홍 감독은 "선수단 상황은 작년 보다 더 어렵다"고 했지만, 목소리는 어둡지 않았다. "구단의 선택에 따라 내게 주어진 임무를 다할 뿐이다. 새로 팀을 만들면 된다." 청소년 대표부터, 아시안게임, 올림픽, 국가대표팀을 거치며 단기 소집과 잦은 선수단 변화를 겪어온 홍 감독에겐 어려운 미션이 아니다.
홍 감독은 이미 지난해 항저우 2군 팀도 직접 지휘해 어린 선수들과 친근감을 쌓았다. 홍 감독은 오전에 1군 훈련, 오후에 2군 훈련을 진행하며 주어진 것보다 많은 일을 했다. "이 선수들로 성적을 내면 더 좋은 것 아닌가." 홍 감독 역시 성적에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항저우 역시 승격을 꿈꾸고 있다. 무리한 투자 없이 내실을 다지자는 것이 항저우의 계획이고, 홍 감독이 미션이다.
이번에 육성 프로젝트를 돌입한 선수들의 향후 몸값은 더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프로축구가 2017시즌부터 23세 이하 선수 의무출전 규정을 도입해 자국 젊은 선수들의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지난 시즌 후반부터 이케다 세이고 전 한국대표팀 피지컬 코치를 영입해 선수단 컨디션 관리의 밀도 역시 높였다. 프로 감독 2년 차. 홍 감독은 항저우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2017.4.6(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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