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청소년선수권대회 준비하는 홍명보 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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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11회 작성일 18-10-17 19:03본문
“축구판 나쁜 관행 깨려면, 나만 잘났다는 생각 버려야”
최근 한국 축구계는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은 A매치와 K리그 일정이 겹치자 자성 없이 네탓 공방만 일삼았다. 서로 만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보다는 언론 등 외부 힘을 빌려 상대를 누르려는 경향이 강했다. 오는 10월 세네갈전을 연기하는 등 양측이 합의점을 찾았지만 양측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뒤였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청소년 축구대표팀 감독(40)이 최근 어수선한 국내 축구계를 향해 의미 있는 일침을 가했다.
홍 감독은 최근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축구계는 나만 잘났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면서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길만이 축구판에 해묵은 나쁜 관행을 깨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타이틀 스폰서조차 잡지 못한 국내 프로축구는 관중난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방한 경기에는 축구팬 수만명이 몰렸다. 불안한 국내 축구계를 의식한 어린 선수들은 앞다투어 외국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오는 24일 이집트에서 열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20세 이하)에 대비해 청소년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홍 감독의 마음은 이래저래 편하지 않아 보였다.
-청소년대표팀 훈련은 잘되고 있나요.
“우리도 역시 전원이 모이지 못한 채 훈련하고 있습니다. 세계대회 개막 2주 전까지는 선수들을 프로 경기에 돌려보내야 하는 규정을 따르기 때문이죠. 합숙훈련은 4주 동안이지만 실제로 훈련할 수 있는 기간은 2주뿐입니다.”
-그렇다면 청소년선수권 전망은 어떤가요.
“독일, 미국, 카메룬 모두 강한 팀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겁을 먹고 할 것을 못하면 안 되죠. 우리는 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길 뿐입니다.”
-지휘봉을 잡고 선수들에게 처음 강조한 것은 무엇입니까.
“출신학교, 고향, 과거 성적은 의미가 없다고 했죠. 지금부터 제로 베이스로 그라운드 위 플레이만 보고 평가하겠다고 했습니다.”
-요즘 어린 선수들의 고민은 무엇인가요.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죠. 프로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드래프트뿐이라 확신이 없어요. 그래서 많은 선수들이 일본으로 가고 있습니다. 일본은 지금 우리 청소년선수들에게 관심이 많지만 정작 K리그는 어린 재목들을 소홀히 대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청소년대표팀에서 기성용을 제외할 때 고민이 많았을 텐데요.
“국가대표팀, 프로팀 모두 기성용이 청소년대표팀에서 뛰는 걸 반대했죠. 그런데 기성용이 정말 좋은 선수이며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재목이라면 선수 생각을 들어봤어야죠. 기성용 본인은 세계대회를 뛰고 싶어했습니다. 저도 기성용을 쓰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쓰기 힘들다고 예상했습니다. 기성용이 없다는 전제하에 훈련을 해왔습니다.”
-감독이 되면 선수 때보다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은데요.
“아직은 지낼 만합니다. 코치들과 함께 지내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있어요. 그런데 조만간 큰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며칠 내로 선수 2명을 엔트리에서 탈락시켜야 하니까요.”
-전임 감독들에게 배운 것을 현재 팀에 적용하고 있겠죠.
“히딩크 감독으로부터는 큰 대회를 앞두고 체력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죠. 지금 일본 피지컬 트레이너를 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팀 운영과 선수들과의 관계 설정은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훈련법과 업무분담은 핌 베어벡 감독에게서 익혔습니다.”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어떤 플레이를 보여주고 싶나요.
“결과에 연연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많은 팬들로부터 우리 선수들이 마치 ‘미친 놈’처럼 열심히 뛰었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팀이라는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이번에 좋은 성적을 내야 2012년 런던올림픽대표팀을 이끌 수 있는데요. 성적이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제 거취는 축구협회에서 정하는 거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0-4, 0-5 등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없는 큰 패배를 당한다면 제 스스로 결정을 내릴 겁니다. 세계대회에서는 먼저 실점하면 찬스가 없습니다. 수비를 안정적으로 한 뒤 찬스가 생길 때 골을 넣는 축구를 할 겁니다.”
-언젠가 월드컵 대표팀을 맡고 싶은 욕심은 없습니까 .
“월드컵 감독은 감독으로서 최고 자리죠. 그런데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요. 지금 맡은 역할을 잘하면 기회가 올 수도 있겠죠. 제가 만일 지금 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런 제의를 받는다면 단호하게 거부할 겁니다.”
-축구에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100% 확신은 없습니다. 선수를 하다가 이제 사회에 첫발을 디딘 셈인데요. 과거 명성만 갖고 뭔가를 하려고 한다면 그건 욕심입니다. 지금 내가 처한 이 자리에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스포츠가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나요.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이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겪을 때 국민에게 엄청난 기쁨을 선사하면서 새로운 힘과 도전의식을 심어줬죠. 그런데 스포츠가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는 것은 아쉽습니다. 판사, 검사가 된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 공부를 했다면 운동선수들은 운동장에서 인간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판사, 검사든, 운동선수든 사회적으로 똑같이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이청용, 기성용이 해외로 나갔는데요. 해외로 진출하는 가장 적당한 시기는 언제라고 보십니까.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새로운 환경이 필요할 때입니다. 실력에서 한 단계 넘어야 할 그럴 때죠. K리그에서 잘하는 선수는 새로운 환경이 마련돼야 자기 플레이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저도 서른 나이에 일본으로 갔지만 그때 심정은 18세 때 대학에 갈 때와 똑같았습니다.”
-최근 국가대표팀과 프로팀이 일정문제로 갈등을 빚었습니다.
“일본에도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외부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내부적으로 합의점을 찾죠. 우리는 밖으로 먼저 드러납니다. 잘못한 것을 밖으로 알리는 꼴이죠. 그렇다보니 축구판을 바라보는 외부 시선이 좋을 리 없고요. 이번에 협회와 연맹은 갈등이 외부로 알려지기 전에 무조건 내부적으로 합의점을 찾았어야 했죠.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 축구판에는 모두가 잘났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어요. 축구계 인사들의 마음이 앞으로 더욱 열려야 합니다.”
-K리그는 왜 인기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박찬호가 미국에 진출해 좋은 플레이를 보일 때 우리 국내 야구 인기도 주춤했어요. 지금 축구도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축구가 중계되면서 K리그는 상대적으로 매력을 잃었습니다. 감독은 관중을 매료시킬 수 있는 좋은 플레이, 선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정신, 구단직원은 생존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추구하는 등 관계자들이 효과적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합니다.”
-홍명보 장학재단을 좀 더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요.
“있습니다. 지금은 매년 30명 정도에게 혜택을 주고 싶지만 앞으로는 좀 더 많은 학생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요. 어떤 제의가 오면 긍정적으로 고민할 생각입니다.”
-정치권에서 영입제의가 온 적은 없습니까
“2002년 대선 직전 노무현 후보 측에서 지지를 부탁했지만 거절한 뒤에는 전혀 없습니다. 노 후보와는 대선 직전 비행기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인사말만 했을 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2002년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16강을 확정한 뒤 그날 라커에서 만났죠. 당시 제가 병역혜택을 부탁드리자 김 전 대통령께서는 관계기관과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때 분향소를 다녀왔습니다.”
-축구선수로 성공했습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사실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과거 명성만 가지고 일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앞으로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축구행정 경험을 쌓는 쪽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감독은 쉰 살 이전에 끝낼 겁니다.”
홍명보 감독은
동북고-고려대를 나와 10년이 넘게 한국축구대표팀의 중앙수비수를 맡아 대표팀의 기둥 역할을 해냈다. 1990년 고려대 재학 시절 국가대표팀에 뽑힌 뒤 국내 선수 최다인 135차례 A매치(9골)를 뛰었다. 90년 이탈리아월드컵부터 2002년까지 월드컵 본선 무대를 4차례 밟았고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에 기여했다.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서 4강행을 확정짓는 골을 성공시켰다.
프로선수로는 92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문한 뒤 97년 J리그로 옮겨 가시와레이솔 등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잠시 국내로 복귀했다가 2003년 미국프로축구 LA갤럭시로 이적해 2004년 현역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 이후에는 올림픽·국가대표팀 코치로 활약했다. 현재는 홍명보장학재단 이사장 겸 대한축구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초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돼 오는 24일 개막하는 이집트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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