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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의 센터서클]돌아갈 길 모르는 홍명보 감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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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148회 작성일 18-10-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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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거취는 '뜨거운 감자'였다. 돌아갈 수도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K리그에서 러브콜도 있었고, 결정만 하면 새 둥지를 틀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확고했다. 눈을 돌리지 않았다. 잔류를 바라는 선수들의 눈동자를 저버릴 수 없었다. 홍명보 감독(47)의 '2부 리그 인생'이 시작된다. 올 초 홍 감독의 축구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의 아픔을 딛고 클럽 감독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항저우 뤼청의 지휘봉을 잡았다. 2005년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줄곧 대표팀에서 코치와 감독 생활을 했다.

전혀 다른 삶이었다. 대표팀은 경기가 끝나면 해산한다. 반면 클럽팀은 오늘 본 선수를 내일 다시 볼 수 있다. '소박'한 곳에서 기쁨을 찾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첫 시즌은 아픔이었다. 1부 리그 잔류가 목표였지만, 그 벽을 넘지 못했다. 항저우는 16개팀 가운데 15위를 차지해 내년 시즌 2부로 강등됐다.

흐름을 깼다. 강등 사령탑은 으레 경질되는 것이 불문율이다. 홍 감독과 항저우의 계약기간은 2년이었다. 1년이 남았지만, 거취는 불투명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홍 감독을 향한 항저우의 눈길은 달랐다. 계약 연장을 요청할 정도로 매달렸다. 한 시즌을 보낸 그의 그림자는 그만큼 진했다.

항저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거대한 자본의 힘을 가진 중국 팀이 아니다. 타 구단에 비해 재정이 넉넉지 않다. 경쟁력이 있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도 아니다. 홍 감독의 주변에선 애초에 항저우 행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명예회복과는 거리가 먼 길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많은 분들이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동안 명예를 위해 축구를 하진 않았다. 과연 축구를 하며 내가 얼마나 많은 명예를 가졌나 싶다. 이번 일도 잘하고 좋아하는 축구를 위해 선택한 것이다."

궁금한 사실 하나, 2부 강등에도 항저우는 왜 홍명보일까. 홍 감독은 왜 항저우일까. 중국 축구의 감독 계약은 통상은 11월에 이루어진다. 계약도 12월 1일 시작된다. 하지만 홍 감독의 출발은 한 달 늦었다. 1월 1일자로 계약이 성사됐다. 그 사이 항저우의 지난 시즌 베스트 11 가운데 절반이 팀을 빠져나갔다. 홍 감독도 갑갑했지만 '탓'으로 돌릴 여유는 없었다. 묵묵히 땀으로 이야기할 뿐이었다.

외국인 감독에 대한 고정관념도 허물었다. 항저우는 중국에서 가장 더운 '4대 찜통도시' 가운데 한 곳이다. 여름 땡볕에선 서 있기도 힘들 정도다. 한 낮에 훈련을 할 수 없다. 오후 5시 훈련이 기존의 틀이었지만 홍 감독은 선수들의 '야밤 일탈'을 방지하기 위해 오전 훈련으로 바꿨다. 1군 훈련이 끝나면 9명 내외의 2군 선수들까지 지휘했다. 개인을 위한 시간은 없었다. 하루 24시간을 팀을 위해 할애하면서 팀도 감동했다. 항저우는 홍 감독의 진정성에 매료됐다.

사건도 있었다. 항저우는 시즌 초반 롤러코스터를 탔다. 2승1패 뒤 무려 85일 만에 정규리그 3승째를 챙겼다. 6월 25일 허베이전이었다. 선수들도 흥분했다. 그러나 홍 감독은 달콤한 칭찬 대신 채찍을 꺼내들었다. 칼끝은 중국 선수들을 향하지 않았다. 개성이 너무 강해 매사 톡톡튀는 호주의 간판스타 팀 케이힐을 겨냥했다. 감독의 '날벼락'에 선수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그 날 이후 중국 선수들의 눈빛도 바뀌었다.

홍 감독이 항저우를 떠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감대다. 항저우는 23세 이하 어린 선수들의 비율이 80%에 육박한다. 홍 감독도 취임 일성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미래가 밝은 팀으로 만들고 싶다. 당장의 성적도 중요하겠지만 항저우가 원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항저우 구단 선수들의 성장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 약속을 지켰다. 1년이 채 흐르지 않은 시간이지만 홍 감독은 어린 선수들의 '대부'가 됐다. 몇몇은 자신의 계약기간을 홍 감독의 기간에 맞추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항저우가 1부 리그 최종전을 치렀다. 홍 감독은 박태하 감독이 이끄는 옌벤 푸더를 홈으로 불러들였지만 2대2로 비겼다. 1부 잔류에 승점 2점이 모자랐다. 경기 후 라커룸 분위기는 무거웠다. 2부 강등도 강등이지만 홍 감독의 거취가 더 큰 관심사였다. 선수들은 홍 감독의 입만 바라봤다. 그의 선택은 이별이 아니었다. "항저우와 선수들을 위해서 할 일이 더 남았다."

홍 감독은 12월 1일 선수들을 재소집한다. 물론 국내에선 12월의 축복인 자선경기도 개최한다. 홍 감독은 보다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항저우가 1부로 승격하는 데 1년이 걸릴 수도, 3~4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승격하는 순간 중국 슈퍼리그의 '톱4'가 될 수 있는 건강한 팀을 만들겠다."

2부 강등은 부인할 수 없는 현재지만, 홍 감독은 다시 내일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 / 2016년 11월 22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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