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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물질 그 이상의 의미… 인생 사는 도리 축구서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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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946회 작성일 18-10-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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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희망 전령사’ 릴레이 인터뷰 - 홍명보 홍명보장학재단 이사장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기억되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40). 그는 2002년 월드컵 무대를 끝으로 태극 유니폼을 벗었다. 이후 그에게는 그라운드에서 만큼이나 많은 역할이 맡겨 졌다. 올림픽대표팀 코치, 대한축구협회의 이사, 기술위원, 국제축구연맹(FIFA) 선수위원회 위원, FIFA인종차별반대 홍보대사,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홍보대사,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 20세이하(U-20) 대표팀 감독, 그리고 홍명보장학재단 이사장까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직함만 10여개에 이른다.

예전의 홍명보를 생각(?)하고 대뜸 만나자고 전화했다. U-20 대표팀을 이끌고 맛본 첫 우승(수원컵 4개국 국제청소년축구대회)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핑계로 차나 한잔하자고 해 볼 참이었다. 축하 문자에 한참이나 늦게 연락이 닿은 홍명보 감독은 ‘바쁘다. 미안하다’가 인사였다. 그가 전화를 꺼 놓은 것은 청소년대표팀을 보강하고, 9월 U-20세계청소년월드컵대회에 나설 대표 선수들을 선발하기 위해 코칭스태프와 논의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11일 그가 코칭스태프와 기술위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축구회관에서 잠시 짬을 내기로 했다.

홍 감독을 보자 마자 억하심정(?)으로 ‘뭐라 불러 드릴까요’라고 눙을 쳤다.

그는 “바쁜 척하는 것 같아 화나셨나요”라며 “지금은 9월 열릴 세계청소년월드컵대회에 나설 대표팀 감독이기에 ‘홍 감독’으로 불러주셔야지요. 그리고 감독을 맡은 만큼 결과에 대해 책임도 져야 하고, 솔직히 욕심도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을 보면 또 큰일을 저지를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기대해 보시죠”라고 자신 있는 표정이다.

이왕 직함 얘기가 나온 김에 ‘어떤 역할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이사장’이라고 답한다.

홍 감독은 “장학재단 이사장직이 가장 보람 있고, 아마 감독보다 더 오래 하고 싶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것이 사실인데 그 사랑을 돌려주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생 해야지요”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대표팀을 이끌면서도 재단 이사장의 역할에 충실하다. 대표팀 스케줄이 없으면 많은 시간을 재단 일에 투자한다.

홍 감독이 이사장으로 있는 ‘홍명보장학재단’은 1997년 출범 이후 가정형편이 어려운 축구 꿈나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특히 2002년부터는 홍 감독이 월드컵 4강 포상금과 각종 후원금, 광고 출연료 등을 털어 장학사업 규모를 키우면서 매년 초등학교 5학년~고등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30명가량 장학생을 선발해 장학금 전달식을 하고, 한번 장학생에 선발되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년 3차례 축구화 등 축구용품을 지급하고 있다.

“축구를 했던 사람이기에, 지금 축구를 하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것들이 절실할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정진하는 그들을 통해 더 큰 희망을 배우게 됩니다.”

홍 감독이 기부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다. 그가 선수 시절 일본 J리그의 벨마레 히라쓰카로 이적하며 받은 이적금 5000만원을 바탕으로 홍명보장학재단을 만든 것이 시작이다. 그에게 재단을 만들어 기부를 하기 시작한 계기를 물었다.

“광희중 2학년 때였어요. 당시 나는 성동구청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았어요. 물론 나는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공을 차왔지만 그 기억이 어린 나에게는 잊을 수 없었어요. 또 주위 친구 중에서도 돈이 없어 축구를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죠. 누가 신경을 조금만 써주면 운동 잘할 텐데라는 아쉬움이 계속 남았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동료가 자선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운동선수로서 받았던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방법을 구상했고, 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로 결정했죠. 미국에서 잠시 선수생활을 했던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됐어요.”

홍 감독은 “처음 기부를 시작한 것은 그동안 선수로 활동하면서 받은 사랑을 마음이든, 돈이든, 어떻게든 사회에 환원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한 축구꿈나무를 위한 장학사업부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장학생 중 기억에 남는 몇몇 학생이 있어요. 고등학교를 그만두려다 우리 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돼 자부심을 갖고 축구를 열심히 해 대학에 진학한 선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재단의 장학금이 어린 학생의 인생을 바꾼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그의 나눔 활동은 장학사업에 그치지 않는다. 2003년부터는 매년 12월 축구스타들이 참여하는 자선 축구경기를 열어 수익금 전액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백혈병소아암협회, 서울복지재단 등에 전달해 소아암 환아와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있다.

그가 축구장학재단에 이어 ‘자선 축구경기’를 마련하게 된 것은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축구 선수들에게도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를 바래서였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내다보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으로 돕고, 스포츠인은 자기의 경기력이나 명성, 몸을 통해 세상을 밝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사회가 지속될 수 있도록 우리 스포츠인,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축구인들이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한다는 자부심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

홍 감독이 자선축구경기를 마련하면서 프로축구 선수들이 ‘장학재단’에 개인적으로 기부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봉사 활동에 나서는 선수들이 늘었다고 한다.

그는 자선과 기부에 대해 “지원을 받는 처지에서는 당장 물질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나눔이 물질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물질을 나누는 것은 마음을 같이 나누는 것이고,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마음이 넉넉해지고 여유로워집니다”라고 말했다.

홍 감독은 지난 4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자선 축구 수익금 1억5000만원을 전달하면서 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으로 정식 가입했다. 홍 감독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2005년 2억원, 2006년 2억원, 2007년 2억원, 2008년 5000만원을 기부했다. 이날 전달된 성금 1억5000만원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총 8억원을 기부해 현직 스포츠 스타로서는 최고 기부액을 기록했다.

그래도 축구 얘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청소년대표팀, 특히 요즘 대표 선수들에 대해 물었다.

“우선 나와 같은 지도자들이 공부를 더 해야 합니다. 좋은 지도자 없이는 좋은 선수도 나올 수 없죠. 그리고 축구계 전반적으로는 풋볼 패밀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축구계가 너무 개인주의적으로 변했습니다. 양해, 양보, 감사, 배려, 희생이 없어진 것 같아요. 물론 기술이 느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나보다 동료를, 동료보다 상대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축구 꿈나무들과 청소년대표 선수들에게는 기술, 전술 교육에 앞서 인성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어릴 때 축구 골키퍼를 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나요. ‘나는 인생을 사는 모든 도리를 축구에서 배웠다’고. 그래서 우리 축구 꿈나무들과 청소년대표 선수들에게도 ‘선수가 되기에 앞서 인간의 도리를 알라’고 강조합니다.”

홍명보는…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40)는 올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가 U-20(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5월 U-20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제2의 축구 인생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서울 광장초등학교-광희중-동북고등학교-고려대를 거치며 청소년대표, 올림픽대표, 그리고 월드컵대표 등 축구 엘리트 코스를 밟은 홍명보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네 차례 연속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며 오랜 기간 대표팀의 중심이었다. 1992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해 1997년 일본 J리그 벨마레 히라쓰카와 가시와 레이솔을 거치면서 ‘리베로’ 명성을 떨친 그는 J리그 최고 연봉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2003년에는 미국 메이저리그축구(MLS) LA갤럭시에도 진출해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기도 했다. 홍명보는 2004년 현역 은퇴 후 2005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휘하고 있는 성인대표팀 코치를 맡으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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